MONTREAL



Montréal


크기 및 인구 

몬트리올 (불어 발음은 몽헤알)은 캐나다에서 토론토 다음으로 큰 도시로 인구가 165만명이며 광역 생활권으로 치면 400만에 육박한다.
몬트리올은 또한 불어권 도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프랑스 파리.
절반 이상이 불어를 모국어로 하며 영어 사용인구는 대략 13% 수준이다.

세계에 알려진 계기 

몬트리올을 사람들이 알게된 것은 1967년 세계 엑스포를 통해서다. 이때 바로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그 유명한 "자유 퀘벡 만세"를 외쳤던 곳이 바로 이 몬트리올 시청이다.
우리에게 친근해진 것은 1976년 하계 올림픽 덕분이다. 여기에 레슬링 자유형 62kg 급에 양정모 선수가 출전하게 되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다.

기타 이벤트 

현재 몬트리올 영화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세계 재즈축제 등 축제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야구단인 Washington Nationals 의 전신이 이 Montreal Expos 였다. 이 팀이 워싱턴으로 팔리게 된 것이다.
아이스하키 구단 Montreal Canadians가 이곳에 있다.

역사 

1535년 최초로 세인트 로런스 강을 거슬로 와 퀘벡에 정착했던 쟈크 꺄흐티에 Jacques Cartier가 이곳까지 거슬로 올라와 탐험을 하였다. 참고로 퀘벡과 몬트리올은 약 2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1608년 퀘벡을 세운 샹쁠랭 Samuel de Champlain이 1615년에 인디언들에게 카톨릭을 전파하는 비전을 갖고 생로랑 강(Saint Laurent, 영어로 Saint Lawrence) 위에 새로운 도시를 세울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1635년 죽게 된다.
1642년 매조늬브 Paul Chmoeday de Maisonneuve가 데려온 수도사들과 마을을 세우고 정착하게 되며 이로써 몬트리올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다. (아래 사진은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 앞에 있는 매조늬브 동상.) 
이후 1645년 Jeanne Mance는 북미 최초의 병원 중 하나인 몬트리올 Hotel Dieu 병원을 설립한다.



다른 대부분의 캐나다 초기 도시들처럼 몬트리올도 처음에는 모피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어졌다. 도시 이름 Montreal은 원래 Mont Royal부터 출발한다고 여겨진다.


1824년 라신 운하를 건설하여 강물 조절하며 도시 성장 가속화
1849년까지 캐나다 연합국회가 여기에
1880년 Canadian Pacific 철도 본부가 들어서며 철도 중심도시
은행과 금융기관이 대부분 이곳에 있었다. 

캐나다의 실질적인 경제 중심지.

하지만 몬트리올 독립 주장과 더불어 대부분의 기업과 은행이 몬트리올을 떠나 토론토로 이주하게 되면서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역전하게 된다. 현재 캐나다의 가장 크고 중심인 도시는 토론토. 

몬트리올 정제소는 캐나다 가솔린 대부분 생산

대학교 

맥길대학교 / 콘코디아 대학교 - 영어
몬트리올대학교 / 퀘백대학교 - 불어

맥길대학교 - 신입생들의 입학성적이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대학
12명의 노벨상 수상자, 9명의 아카데미상 수상자, 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3명의 우주비행사, 3명의 캐나다 총리, 4명의 해외 국가원수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원자핵 발견
세계 최초로 인공세포, 인터넷 검색엔진 등 발명
세계 경제포럼이 선정한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 중 하나

Old Montreal 

몬트리올은 시내 중심에 과거 흔적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이 아래 지도는 몬트리올 시내 중심부를 보여주며 주로 12번 노트르담 성당부터 16번 시청까지의 길과 시청 앞에 있는 쟈크 까르띠에 광장이 핵심 지역이다.




노트르담 성당


1829년 제임스 오도엘의 설계
네오 고딕 양식 (1922년 화재로 전면 재건축됨)
동쪽 탑은 절제 / 서쪽 탑은 인내
스테인드글라스는 몬트리올의 역사를 그리고 있으며
5772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대단하고
세계 3대 테너가 이곳에서 공연
셀린 디옹의 결혼식 1994년
현 수상 트뤼도가 2000년 이곳에서 아버지 장례식


성요셉 성당



이곳이 가능했던 것은 앙드레 수사 덕분 
앙드레 수사 
1845년 8월 9일 퀘벡에서 출생, 이름 Alfred Bessette
12명의 형제 중 8번째
9살에 아버지가 12살에 어머니가 각각 돌아가시고
1863-67 미국 옷감 공장에서 일하며 삶
1870년 12월 27일 성 십자가 수도회 수사가 되어 Congregation of Holy Cross 앙드레라는 이름을 받음
1871-1909 College Notre-Dame의 수위를 함

성요셉에게 완전한 믿음으로 기도를 함
30살 때부터 치유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는 그것을 모두 성요셉에게 돌림
1874년 2월 2일 지속적 기도 맹세
1901-36 산 위에서 아픈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받음

1904년 10월 19일 성당 건립, 학교 바로 맞은 편에
1909년 7월 성당 지킴이로 명명
1937년 1월 6일 작고 (91세)
2010년 10월 17일 교황 브누와16세에 의해 성인화 Benoît
지금도 매년 200만명 이상이 방문


56개의 종, 10톤, 원래는 에펠탑에 설치 예정
1955년 성당 50주년에 성당에 빌려주었다가 순례자들에 의해 성당에 기증됨

성요셉
입구에 들어서면 성요셉에게 주어진 임무를 조각한 부조 8개
노동자의 대변인 / 처녀들 지킴이 / 가족 유지 / 악마 퇴치 / 불행한 자 위로 / 아픈자의 희망 / 죽는자의 대변 / 교회 지킴이

목발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감사의 흔적들

촛대
3500개의 촛불이 밝혀진 이 꼭대기에는 성요셉의 동상 (보호와 영접)
받침은 백합의 형태를 하며 성모 마리아의 순수함을 의미하고, 분수는 인간을 향한 자비를 연상시킨다
--- 이 뒤에 앙드레 수사의 관이 있다.

앙드레 수사의 심장
앙드레 수사의 심장은 몬트리올 대주교 죠르주 고티에의 주문으로 보관되었다. 유럽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의 심장을 별도로 보관하는 일이 매우 흔한 일이며 이는 존경과 감사를 의미한다.

대성당
코린트식 기둥이 18미터 높이로 서 있고 이 성당 앞 전망대는 해발 164미터이다
1924년 공사 시작 1955년 완성 / 내부는 1966년
벽은 철근 콘크리트와 화강암으로 건설, 천장은 석영암
난방은 벽과 돔 속을 흐르도록 만든 공기에 의해 이루어짐
최대 10000만이 서고 2200명이 앉을 수 있음
돔 내부 높이 60미터 / 돔 꼭대기 십자가까지 높이 97미터
돔의 건축 높이는 155미터 / 해발고도 263미터 - 몬트리올에서 가장 높음
이태리 르네상스 스타일 건물


몬트리올 시청




자끄 까르티에 광장 

(첫 사진 좌측 동상은 영국의 넬슨 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