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HINGTON D.C

Washington, the District of Columbia 


































INSIDE WASHINGTON
- Capitol (국회의사당)
- White house (백악관)
- Lincoln Memorial (링컨 대통령 기념관)
- Thomas Jefferson Memorial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
-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쟁비)

OUTSIDE WASHINGTON (이 코스는 현재 진행되지 않는다.)
BALTIMORE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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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말이면 벗꽃 축제가 열린다. 워싱턴 기념탑과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을 중심으로 온통 세상이 벚꽃으로 뒤덮히는 것이다.
이 벚꽃은 어디에서 온 벚꽃인가?
이 벚꽃이 심겨지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1905년 기억하기도 싫은 을사늑약이 우리와 일본 사이에 체결되고 우리는 자주권을 빼앗긴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카쓰라태프트밀약"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의 카쓰라라는 내각 총리대신과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다. (태프트 William Howard Taft는 1908년 미국 2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 일본은 한국을 먹는다. 서로 먹고 상대에 대해서는 모르는척 하자는 조약이다. 이 조약은 동경에서 체결되었으며 이를 기념해 일본이 벚꽃을 미국에 선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물된 벚나무들이 미국 태평양 연안도시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 병충해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졌고 전량 폐기처분되었다. 
몇 년 후 일본은 다시 도쿄 근교에서 채집했다고 말하며 3천그루를 보냈고 이 나무들은 현재 워싱턴 DC에 심겨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 벚꽃이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일본에서 채칩한 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벚꽃은 일본 벚꽃이 아니라 제주도 왕벚꽃이다. 그리고 이것을 뽑아온 곳은 바로 우리나라 울릉도이다. 울릉도에서 3천 그루의 벚꽃을 뽑아왔다. 이를 일본 벚꽃이라고 얘기하고 얼마전까지 일본 벚꽃 페스티벌을 벌였으니... 아무리 이해를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일본을 얘기할 때는 꼭 놈자를 붙여야 되지 않을까.... 지금도 기회만 나면 헛소리 해대고.... 하여간 언젠가는 반드시 무릎을 꿇려야 하는 나라가 바로 저 입에 담기도 싫은 섬나라! 왜국 일본!
어쨌든 우리의 벚꽃이 이곳에서 축제의 대상이다. 축제 장소는 다음 그림과 같다.




역사 

- 17세기초 유럽인들이 첫 방문했을 때 포토맥 강변으로 인디안들이 살고 있었다. 당연히 서로 간에 갈등이 생겼고, 인디안은 이사를 해야 했다.
- 1788년 1월 23일 James Madison (나중에 미국 4대 대통령)은 수도는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권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 1790년 Compromise 절충 : Alexander Hamilton x Thomas Jefferson, James Madison 사이에 있었던 수도 결정에 대한 절충안으로, 수도를 남쪽 지역으로 하는 대신 정부에서 빚을 떠 안는다는 결정.
- 1790년 7월 9일 국회에서 포토맥 강변에 수도를 만들며 구체적 위치는 죠지 워싱턴이 정한다는 법 통과. 워싱턴이 16일 사인.
- Maryland주와 Virginia주가 각각 Georgetown과 Alexandria로 불렸던 지역을 기부하였고, 1791년 대통령 George Washington의 이름을 따 건설
- Columbia라는 명칭은 당시 일반적으로 미국을 지칭하는 시적 표현 중 하나이다.
- 1814년 8월 24-25일 캐나다와의 전쟁에서 백악관, 재무부, 국회를 비롯 많은 건물들이 불에 타 처참하게 변했다. 모두 빠르게 복구되었으나 국회 건물만은 1868년까지 복구되지 못했다.
- 1830년대, 워싱턴 남부였던 Alexandria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곳은 미국 노예무역의 중심지였었고 사람들은 혹시 이곳에서 노예무역이 금지될 것을 두려워하여 Virginia주로 다시 돌아가기를 요청한다. 버지니아주는 회의를 열어 1846년 7월 9일 반환을 결정함으로 워싱턴을 구성하기 위해 주었던 Alexandria는 다시 Virginia로 돌아가고 Maryland주에서 준 곳만 남게된다.
- 1850년 노예제 자체는 인정되지만 노예무역은 불법화된다.
- 1861년 남북전쟁과 더불어 연방정부가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며 특히 인구증가는 해방된 노예의 증가에 기인한다. 1862년 전국 노예해방 이전에 워싱턴에서는 약 3100명의 노예가 해방되며, 1868년 이들 중 남자들은 투표권을 얻는다. (미국 여성투표권 1920년)
- 1873년 Grant 대통령이 인정한 Shepherd 주시가가 워싱턴 현대화를 시도했지만 파산만 했고, 1874년 국회는 3명의 운영관이 도시를 운영하도록 했다.
- 1888년 최초의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도시가 점점 확대되었지만 집 상태와 노동 상태가 좋지 않았으므로 1900년대 초 City Beautiful Movement의 일환으로 도시재탄생 계획을 전국 최초로 실시한다.
- 1930년대 New Deal 정책으로 소비가 증가하면서 많은 정부건물, 추념비 및 박물관을 세우게 된다.
- 1968년 4월 4일 Dr. Martin Luther King Jr.,이 암살된 후 중심부에서 수 많은 흑인 폭동이 있었고 13,600명의 병력이 투입되어 제지했으나 많은 건물이 불탔고 이는 1990년대 말까지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다.
- 1973년 한명의 시장과 13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1975년 Walter Washington이 첫 흑인시장으로 선출되었다.
- 2001년 911 때는 Arlington 국립묘지 옆에 있는 Pentagon에 비행기가 충돌했고, 또 다른 비행기가 워싱턴을 향해 오다가 제지하는 사람들과 실랑이 끝에 Pennsylvania에 추락했다.


현재

- 2016년 7월 현재 인구 681,170명이며 주변에서 출퇴근하는 인구 때문에 주 중에는 백만 이상이 되며, 전체 수도권을 계산하면 6백만이 넘는다.
- 국회, 대통령, 최고법원으로 대변되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중심이 모두 모여있고, 176개의 세계 대사관들이 있으며 기타 수 많은 조직들이 자리잡고 있다.
- 법률에 관한 투표권은 없지만 다섯 명의 지명직 국회의원이 하원에 있다. 하지만 상원에는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3표를 갖는다.


지형

- Alexandria를 Virginia에 돌려 줌으로 인해 총 면적 68.34평방마일 (177평방킬로)이며 Maryland와 Virginia에 접해있다.
- 7,617에이커의 (9,324,534평) 공원 - 도시 전체 면적의 19.4% (미국 두 번째, 첫 번째는 뉴욕 19.6%; 38,229에이커 46,798,950평) (San Francisco 18%, Jersey City 17.3%, Boston 16.3%, Philadelphia 12.6%, Long Beach 10.1%, Baltimore 9.5%, Chicago 8.2%, LA 7.9%)


도시구성

- 워싱텅은 1791년 프랑스 태생의 건축가 Pierre (Peter) Charles l'Enfant 에게 도시계획을 주문하며 그는 스코트랜드 출신 측량사 Alexander Ralston에게 도움을 요청해 도시를 계획한다. L'Enfant은 Thomas Jefferson이 그에게 보내준 파리, 암스테르담, 밀라노 등의 도시 디자인에 기초에 넓은 길로 구성된 방사형의 도시를 구상하며 현재 National Mall이 된 길이 1마일 너비 120미터의 정원이 함께 있는 grand avenue도 구상한다.
- 1792년 3월 L'Enfant이 검열관과 문제를 일으키자 워싱턴은 그를 해임하고 Andrew Ellicott 라는 그와 함께 일했던 측량사에게 일을 맡기지만 대부분 원래 계획을 따랐다.
- 1900년대 초까지 L'Enfant의 계획과는 반대로 슬럼이나 혹은 무질서한 건물들이 들어섰고 National Mall에는 기차역까지 들어왔다. 1901년 McMillan Plan을 통해 도시가 재구상되며 이 구상도 L'Enfant의 첫 계획을 대부분 유지했다.
- 1910년 법에 따르면 인접 도록 폭보다 낮은 건물들은 6.1미터를 추가해 올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은 워싱턴 건물은 법적으로 국회의사당이나 워싱턴 기념물 (169미터)를 넘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제한은 없다. 어쨌든 높이 제한으로 인해 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비판한다.
-도시는 국회의사당을 기준으로 NW, NE, SE, SW 등 네 구역으로 구분되며, 동서로 난 길은 알파벳을, 남북으로 난 길에는 번호를 붙였다. (C Street SW / 4th Street NW) 그리고 대각선 Avenue 들은 주로 주의 이름들을 붙였다.
- Pennsylvania Avenue ; 백악관과 국회 연결 / K Street ; 많은 로비그룹들이 있는 길 / Massachusetts Avenue : Embassy Row


인구구성 2015

흑인 48.3%
백인 44.1% (36.1% non-hispanic)
아시안 4.2%
기타
워싱턴은 도시 설립부터 흑인이 많았다. 1800-1940년까지 전체 인구의 30%였으며, 1970년에는 70%까지 치솟았다. 이후 감소가 되면서 주변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유 중 하나는 주택의 고급화 때문이다.
2010년 전체 인구의 17%가 18세 이하이며 (미국 평균은 24%) 평균 나이는 34세로 미국에서 가장 적다.
2007년 보고에 따르면 인구의 1/3이 기능적으로 문맹이며 (국가 평균 1/5), 절반이 대학 졸업 이상이며, 평균 개인소득은 $55,755(미국 최고)이지만, 19%가 가난에 허덕인다. (미시시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음.)